새해 들어 책을 한 권도 못 냈다. 일정이 미뤄진 탓이 제일 크지만, 일단 내 마음도 육아에 정신을 뺏겨 느슨해진 측면이 가장 크다. 유찬이는 이제 꽉 찬 17개월이다. 유찬이는 17개월 매일매일 예쁘고 사랑스러웠다. 사실 육아가 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는, 내 머리에 반 이상은 유찬이 생각, 우리 집, 가족 생각이 크게 자리잡았다. 결혼과는 다른, 아이는 내 우주가 돼 버렸다.
예전에는 직장을 그만두는 선배들을 보면, 조금 더 욕심을 갖고 의지를 다져 다니지, 왜 아이때문에 일을 손에 놓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.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환경은 그렇다 치더라도, 그녀들의 프로페셔녈함이 줄어드는 게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. 육아하는 선배들은 퇴근해 집에 가기 바쁘니 저녁 회식도 거의 없고, 후배 케어도 잘 안 해 준다고 되려 서운해했던 적도 있다. 사람은 역지사지, 경험해 보지 않고는 말할 게 없다. 정말로. 지금의 나를 바깥의 시선으로 내가 봤던 선배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게 없을 것이다.
누군가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, 내 스스로 이건 문제다 싶다. 한번도 이랬던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, 고백하건대 신기하게도 일에 대한 의욕이 없다. 얼마전엔 역할에 대한 욕심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진 것 같다. 회사 가서 집에 갈 생각만 하는 건 아니지만, 일을 욕심을 갖고 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일을 그저 해 나가는 기분이다. 그런데 일에 대한 욕심과 의지가 엄청나게 중요한 게 편집자다. 내가 의욕을 갖고 일을 추진하면 내용이 달라지는데, 지금 난 일을 안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좀 멍하다. 유찬이 생각하면 즐겁고. 회사 생각하면 멍.
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자들이 내면과 외면, 안과 밖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이제야 알겠다. 그리고 나도 이왕에 일을 할 거고, 지금은 내가 콩깍지가 씌어 유찬이한테 빠져 있지만 유찬이가 조금 더 커서 말 안 듣고, 속 썩이고 그러면 역시 나한텐 일밖에 없어를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. 평상심을 유지하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잃지 말아야겠다. 회사와 집 잘 분리하고, 편집자로서 성장하는 것에 관심을 멈추지 말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. 편집자로서의 뾰족함, 날 서 있음, 일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한다. 벌써 3월 1일인데, 읽은 책 리스트도 너무 빈약해 이 새벽에 반성 중이다.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, 육아하며 편집자로서 시즌 2를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, 매일매일 일지 적는 것도 다시 시작해야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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